Chaos

상한 영혼을 위하여

꿈을따는아이 2015. 3. 31. 12:45

상한 영혼을 위하여

고정희




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

한 계절 넉넉히 흔들거리니

뿌리 깊으면야

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

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

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


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

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

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

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 듯

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

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디를 못가랴

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


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

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

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

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

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

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서

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으니